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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의 부르심

2011.03.04 08:13

관리자 조회 수:1439

||0||0모처럼 짬이 생겨 산책을 나섰다.
틈이 나는 대로 집 주변의 호수를 산책하는 게 내게는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호수를 끼고 2마일 지점까지 걸어 가서 숲 속에 군데 군데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되돌아오면 대략 한 시간 반이 걸린다.

그 시간이 내게는 운동겸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호수 주변 계곡의 들꽃이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지 눈이 부실 지경이다. 같은 종(種)끼리 군락을 이루어 만개한 꽃들로 계곡은 각기 다른 빛깔의 분무기를 살포하여 멋을 낸 듯 환상적이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

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키를 낮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래서 하찮게 여겨지는 풀꽃이 무리를 이루니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어 장관을 이룬다.



수분 부족으로 시들어 말라가던 덤불 더미에서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때를 기다리던 씨앗의 생명력과 인내가 놀랍다. 걸음 걸음마다 눈에 띄는 풀꽃이 너무 신기하고 사랑스러워 눈 인사를 건넨다. 며칠간의 가슴앓이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다.



한국의 글 동네를 떠난 지 벌써 십 년에 가깝다.

그리워하던 자식들과 더불어 사는 현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의 덕담처럼 복 많은 말년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득 문득 복병처럼 찾아 오는 정신적 갈증으로 남몰래 마음을 앓는다.



꼭 해야 하는 ‘큰 일’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하찮은 일에 매달려 세월을 죽이고 있는 것 같은 허망함.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만큼 살 날이 많은 건 아니라는 조급증. 이런 정신적 갈등으로 나는 떠나온 글 동네에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말하자면 소명의 의미를 너무 높고 큰 차원에 두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시달리며 숨 가빠 하는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런던의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 빗자루를 들고 낙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청소부를 만났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세익스피어가 묻자 청소부는 도리어 그에게 물었다.

“나는 왜 당신처럼 모든 사람에게 추앙 받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이런 청소부로 있어야 합니까?”

그러자 세익스피어가 대답했다.

“낙심하지 마시오. 당신은 지금 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이 쓸고 있지 않소.”

자신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고귀하고 신성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청소부는 크게 용기를 얻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가 어찌 그 시대의 청소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나 역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남이 부르는 노래가 더 달콤해서, 다른 이가 쓴 글이 더 훌륭해서 망연해 있었던 건 아닌지…..



소명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르는 말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성직자나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가장은 또 그 나름대로, 세상의 모든 만물은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각기의 소명이 있으며 그 소명을 수행하는 과정이 삶인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고 최선을 다 해 현재를 사는 것이 내가 받은 소명에 충실 하는 거라는 사실을 때로는 잊고 산다. 아니, 잊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더불어 사는 일상의 부산함 속에서 어린 손녀의 소꿉 동무가 되고, 딸의 손이 미처 못 미친 집안 일을 거드는 일, 그게 바로 순간을 살며 나의 소명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라고, 내 소명은 보다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한사코 고개 드는  자의식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후 얻게 되는 평화는 각별하다. 불편심(不偏心) 즉 아무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으로 느끼는 충만한 기쁨이 눈과 귀를 한층 밝게 열어준다.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새들의 지저귐이,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청동오리 떼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오기까지 삼십 여 년의 긴 세월을 평범한 목수로 사셨노라고. 기다림은 또 다른 소명을 준비하는 과정인 거라고, 매 순간의 부르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잠(시편 13,3)’ 자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담정님의 글 중에서


미 사 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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