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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2019.07.05 15:31

옥펠릭스 조회 수:131





















||0||0"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22,17-20)

시온산은 335년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 위에 "부활 성당"이 지어지기까지 예수살렘 유다계그리스도 공동체의 중심지였으며 주교좌 성당이 있었던 곳이다. 그 후 이 성당은 614년에 페르시아 군에 파괴되고 폐허로 남아있다가 십자군 시대에 다시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을  지었지만 그 후 이슬람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 폐허가 된 이곳을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와 왕비 산치아가 이집트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호멧으로부터 매입하여 작은형제회에 봉헌하였고, 작은 형제회에서는 이 부지에 수도원과 고딕식 양식의 2층 기념성전을 지어 '최후의 기년념성전'이라 불렀다.
지상층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요한 13,1-20)을 기억하는 경당, 다윗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 경당(요한 20,24-31)이 있었고,  윗층에는 최후의 기념 경당(마르 14,12-26)과 성령강림 기념 경당(사도2,1-13)이 있었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족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1517년에는 이집트를 쳐부수고 대제국을 세웠다. 그리고 최후의 기념 성당과 수도원은 다윗 왕이 묻혀 있다고 주장하는 오스만 터키 관리들이 빼앗았고, 1551년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 무슬림도 다윗을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 중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이때 시온산에서 쫓겨난 작은 형제들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 마련해 준 거쳐에서 머무르다가 현재의 관구 본부가 있는 산 살바또레 수도원을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수도원 건물은 다시 이스라엘  정부 손으로 넘어갔고, 1층은 다윗 무덤과 시나고그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었고, 2층의 성령갈림 경당은 폐쇄시키고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만 개방 하면서 성 목교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마르 14,13-15)말씀하셨다.

시온산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의 1층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행하시고,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 했던 이곳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이 되면서 구원의 도시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인 "시온" 즉, "거룩한 시온"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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